이유없이 죽어가는 여자들.

잡힐 것만 같은, 바로 내손에 잡힐 것만 같은 범인.

그러나 잡히지 않은 범인.

계속 죽어가는 여자들.

이성적인 것이 비이성적인 것이 되고, 비이성적인것이 이성적인 것이되고. 이성과 비이성은 구분이 모호해 지고.

내가 보호해 줘야 할 여자아이는, 내가 반창고를 붙여줬던 여자아이는 비참하게 죽어가고, 나는 싸늘한 사체가 따쓰했던 시절, 감추고 싶어했던 육신을 가려주는 시늉만을 한채 등을 돌린다.

지금 나는 그 현장을 떠나, 내 아들 딸과 아침 식사를 하고, 어제밤 밤새 게임을 했던 아들놈을 나무라며, 그렇고 그런 사업 이야기를 하지만, 그놈은 빤히 살아있고, 여전히 현장을 배회하며, 어디선가에서 “살인을 추억하고” 있다.

그놈에겐 “추억”이지만, 내겐 부채이며, 회한이며, 지우고 싶지만 불현듯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악몽이다.

80년대는 그 시절에 그짓을 했던 놈들에겐 추억이지만, 그놈들, 그짓을 단죄하지 못한 자들에겐, 단죄할 수 있었는데, 바로 손앞에선 놓쳤던 자들에겐 악몽이다.

내 삶의 허약한 행복은 그런 추억과 악몽위에 올려진 붕괴 직전의 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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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한번, 그리고 오늘 티비에서 한번 살인의 추억을 두

/* 번째 보다.

/* 극장에선 볼땐 민방위 훈련, 이근안, 시위장면등 피상적인

/* 메타포만 읽혔는데 다시 보니 “추억”이 읽힌다.

/* 감독 봉준호는 단편 시절부터 참으로 깊이가 있다. 질투가 나

/*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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